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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이승헌 총장의 일지스토리 1, “아버지의 한마디” - 이승헌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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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이승헌 총장의 일지스토리 1, “아버지의 한마디  - 이승헌 총장

 

(이승헌) 50여 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고향을 떠올리면 늘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울어대던 매미소리,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 잘 자란 소나무들과 바람에 실려 오던 솔향이 생각난다.

 (이승헌) 1950년 충남 천안시 성남면 대흥리 대양마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한학과 천문지리에 밝으셨다. 아버지는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다. 내게(이승헌) 처음 단군을 알려주신 분도 아버지다. 다른 사람들이 다 서기를 쓸 때도, 당신만은 늘 단기를 쓰셨다. 늘 책을 끼고 사시던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살림과 농사를 도맡아 하셨다. 기질이 활달하고 담이 크셨으며, 잠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고 늘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셨다.

 


3 2녀 중 장남이었던 나(이승헌) 는 유난히 여리고 겁이 많았다. 몸도 약했고 학교 공부에는 도통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글씨를 쓰려하여도 삐뚤빼뚤 도무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5분 이상 가만히 앉아 있으면 좀이 쑤셨다. (이승헌) 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책 한 권을 변변히 다 채워본 적이 없다. 상이라고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계 보는 법을 알고 있었던 덕에 받은 노력상이 전부다.

 

지금 생각하면 심각한 집중력 장애를 겪었는데, 성적이 형편없다 보니 내(이승헌) 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교감선생님이었던 아버지를 난처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래 아이들하고 노는 것이 재미가 없어서 혼자 뒷산을 쏘다니며 온갖 산열매를 따먹곤 했다. 가끔 내(이승헌) 가 내 몸 속에 갇혀 있어서 너무 답답하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곤 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가기 싫다는 친구의 등을 떠밀어 저수지에 수영을 하러 갔다가 친구가 물에 빠져 죽는 큰 사고가 있었다. 그날 이후 나(이승헌) 는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겪게 되었다. 학교공부와는 더 담을 쌓게 되었고, 마음 둘 곳이 없었던 나는 태권도, 합기도 등의 무술에 무서울 정도로 매달렸다.

 

고등학교 때는 지독한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 넌 왜 사냐?” 는 질문으로 친구들을 당황하게 했고, “인간은 죽으려고 사는 거야라고 되새기며 성실히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질문과 원망으로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하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부모님은 대학 진학을 바라셨지만 공부와 담을 쌓고 산 나(이승헌) 로서는 쉬울 리가 없었다. 부모님 등쌀에 못 이겨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해 서울에 올라갔지만, 학원비는 무술공부를 한답시고 다 써버리고, 대학시험에는 두 번이나 연거푸 떨어졌다. 마음속으로 대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내(이승헌) ,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호박을 심고 가꾼 일이다. 몇 년 묵은 고향마을의 쓰레기를 한 달 내내 치우고 호박을 심어 가꾸면서, (이승헌)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가 대견해보였다. 일하는 보람과 창조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나 뿐 아니라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이다. (이승헌) 게서 대학진학에 집중하려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아버지는 정년퇴임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갑자기 사직을 해버리셨다. 늘 천문과 풍수지리 책자를 가까이 하셨는데 어느 날인가는이놈의 천문도 소용없다. 천하를 호령해도 모자랄 운세를 타고 난 놈이 왜 이 모양이냐. 개똥철학은 집어치우고, 먼저 사람이 되어라.”고 호통을 치시며 보시던 책자를 아궁이에 태워버렸다.

 

마지막 한 가지는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꾼 꿈이다. 꿈속에서 머리가 집채만 한 호랑이를 만났다. 그때 내(이승헌) 뒤에는 내가 태권도를 가르치던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학생들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두려웠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달려드는 호랑이의 다리를 두 손으로 꽉 잡았는데 호랑이가 입을 딱 벌리고 내 머리를 통째로 물어버렸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나자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3분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던 내가, 그날은 3시간이나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때 이후로 사물과 공부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몇 개월 후에 나는 서울 보건전문대학 임상병리학과에 입학했다.

 

지금도 나(이승헌)는 아버지께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고마움을 느낀다. 나 때문에 그렇게 속이 상하셨을 텐데도 끝까지 나에 대한 꿈과 기대를 버리지 않으셨다. 대기만성을 입버릇처럼 얘기하시며, 너는 언제가 큰일을 할 거라고 격려해주셨다. 산다는 것이 너무나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그 시절에, 아버지의 그 한 마디에 나(이승헌)는 다시 힘을 얻곤 했다.

일지 이승헌 총장의 깨달음의 동화-이승헌의 청년시절

 
이승헌 총장의 일지스토리 원문보기 http://www.ilchi.net/Story/3088